나이 63세, 엄마가 필요해~
“여보세요. 언니? 뭐가 또 왔어요.”
“문자가 왔어? 알았어. 센터로 와. 같이 점심도 먹고 문자도 확인하자”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겨울, 그녀가 영등포역을 배회할 때였다.
센터 초기에 2년 정도 이용을 하다가 일을 얻어 자립을 했다. 당시에는 노숙인들이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제도화되기 전이어서 그녀는 고시원에 둥지를 틀고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여는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월급은 잘 받는지 저축은 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면 “예”라고 대답했지만 늘 미덥지가 않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녀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한글은 겨우 이름만 쓸 수 있었고, 숫자도 한 자릿수를 이해하는 정도여서 그녀의 이런 약점을 아는 사람들은 급여도 제대로 안주고, 돈을 맡아서 저축을 해준다고 하고는 결국은 떼먹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외로워서 남자를 사귀면 그 남자도 결국은 돈만 뺏고 떠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돈을 뺏길 뿐만 아니라 명의도용까지 당해서 부채까지 짊어지게 되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날아오는 채무 독촉장이 무서워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갈 곳이 없어지면 센터에 들려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떠나곤 하면서 20여 년의 인연을 이어왔다. 센터에 머물면서 신용회복도 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했으나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어울려 사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던 그녀가 돌아왔다. 그 동안에 친척 집에서 노인을 돌봐 달라고 해서 돌봤는데 노인이 돌아가시자 마자 집을 나가라고 해서 대전에서 월세를 얻어서 살고 있는데, 집도 너무 춥고 집주인이 못된 사람이라서 도배도 안해주고 살기가 힘들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로 오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굳은 약속을 했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고시원에서 지내되, 자주 통화하고, 연락하면서 임대주택을 신청해서 독립을 하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본인이 오랜 기간 노숙도 하고 고시원도 얻어 지내던 영등포역 인근에 고시원을 얻기로 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내다가 드디어 LH 전세임대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어 계약을 했다. 센터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집을 얻고, 이제는 매일 센터에 들러서 얼굴을 보겠다고 한다.
“고시원 총무는 맨날 술먹고 지랄하지. 남자들이 문을 열고 있지. 응~ 벌거지도 나오지” 하루라도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살고 싶지 않은 그녀는 집을 얻자마자 고시원을 탈출했다.
새로이 살림을 장만하려 하니 그 동안 수급비를 모아서 준비했던 돈이 빠듯하다. 하지만 스스로 모은 돈으로 침대와 생활 가전들을 사서 집에 들여놓으니 절로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언니, 밥솥이 왔어요~”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그녀는 전자제품 사용도 어렵다. 가전이 도착할 때마다 방문해서 사용법을 알려주고, 표지를 해주며 기억하도록 돕는다. 60이 넘은 여인에게 장롱의 짐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살림살이 정리는 어떻게 할지, 청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이젠 속을 안썩일 거예요. 그 때는 철이 없어서.. 왜 그랬는지. 괜히 남자 따라 다니고..”
“엄마, 엄마~”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나의 손을 잡는다.
엄마라는 호칭에 펄쩍 뛰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다시 “엄마, 엄마”를 부른다.
그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나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