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유난히 떠나는 이들이 많다.
센터를 떠나는 이들은 대부분 2년여간 자립을 준비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떠난다. 남아 있는 긴 인생을 생각해보면 시설에서 보내는 2년은 어찌 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센터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거리노숙을 하다가 또는 거리 노숙의 위기에서
의지할 곳을 찾아오는 이들이다.
처음에 올 때는 각자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둔 문제들을
잔뜩 짊어진 채 작은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온다.
센터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하루 사느라 바빠서 챙기지 못했던 나를 챙기고,
구불구불 살아왔던 삶에서 쌓아두었던 감정도 추스르고,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도 하나씩 해결하는 숙제를 풀어내는 시간이다.
10월초 가을의 문을 열며 센터를 나서는 최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겨울, 추위를 피해 센터로 들어왔다.
딸이 하나 있는데 정신질환이 있던 최선생님은 딸을 돌보기가 어려웠다.
딸은 청소년 시설에서 주로 생활했고, 잠시나마 같이 지낸 동안에도 정신질환으로 인해서 관계는 더 악화되었다. 파트타임 일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질환이 발목을 잡았다.
점점 무기력해졌다. 조금씩 빚은 쌓여가고, 해결할 방법도 없이 딸마저 엄마 곁을 떠나면서 최선생님은 무너졌다.
센터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힘을 내고, 빚도 갚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고 자립을 준비한다는 것이 부담되었다.
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좀 더 길게 재활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이 안되어 입소생활비를 낼 수가 없었다. 2021년 7월. 최선생님은 다시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다시 계획을 세웠다.
시설에서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정신질환 치료에 집중했다. 센터에서 권하는 일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다. 시설 생활인을 대표하여 운영위원으로 활동도 하고, 자립을 위한 저축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혼을 위해서 길고 긴 소송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지난 2년 동안 풀어야 했던 숙제를 다 풀었다. 이혼 소송도 마치고, 자립에 필요한 돈도 저축했다. 그리고 지난 9월, 20년 동안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인 지원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정말 그동안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아요. 혼자서는 못했을 거예요” “이제 집이 생겼으니 따님도 언젠가는 엄마를 찾아 올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그랬으면 원이 없겠어요”.
숙제 하나는 남았지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내미는 손길은 힘차다.
지역사회에서 새둥지를 틀기 위해 센터를 떠나는 일은 떠나는 이에게는 설레임의 시간이지만 남아서 보내는 이들은 부러운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엇갈린다.
2년 동안 최선생님과 방을 같이 쓰셨던 최씨 어르신은 망상증상으로 독립을 거부하여 7년 째 센터에서 사시는 분이다. 납치당하는 것이 두려워 매일 사무실에 들러 사회복지사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70대 후반의 최씨 어르신은 딸 같았던 자상한 최선생님이 이사가는 날을 잡은 후 부쩍 힘이 빠진다.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힘이 나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힘차게 이삿짐 차에 오르는 최선생님 뒤로
심드렁한 최씨 어르신의 희미한 손길이 남는다.
잘 가요~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