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라이터*
올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Y는 습관처럼 집을 나갔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다시 쉼터를 찾아왔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 거리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계절이 훌쩍 지나버린 옷, 바닥이 보이는 신발. 그 모습이 아무렇지 않은 듯 수줍게 서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웃음이 먼저 나왔다.
“반가워요, 잘 지냈어요”라는 물음에 대답대신 천진한 웃음만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쉼터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다.
‘18살’
Y는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18살의 나이로 살고 있다. 같은 방에 있는 딸같은 아이를 보고도 ‘언니’라고 부른다. 한번은 “Y선생님, 딸같은 아이인데, 그냥 oo라고 이름 부르세요”라고 했더니, “이제 내 나이가 18살인데, 그렇게 부르면 안되죠. 왜 그러세요.” 라고 버럭 화를 내셨다.
무엇이 그녀를 ‘18살’의 세월 안에 가두고 있는지 그건 알 수가 없다, 그녀의 기억과 그녀의 언어들은 이미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기에.
‘그늘’
센터에서 미술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Y가 처음 먹물로 그린 그림은 ‘그늘’ 이라는 제목의 난화였다. 제목을 그늘이라고 정한 이유는 자신이 살 궁리를 하다보니, 그늘이 졌고, 그래서 작품제목도 그늘로 이름지었다고 했다.
그녀의 말과 표정, 어디에도 삶에 대한 무게와 고민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 렇게 사소한 그림을 통해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 그늘의 어디엔가 18살 이후의 지워진 기억들도 같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담배와 라이터’
만원으로 행복가게에서 Y가 구입하고 싶은 물건은 ‘담배와 라이터’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돈만큼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 참 반가운 말이었다. 일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물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가 ‘담배’를 사기 위해서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원대한 꿈이 아니더라도, 원대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삶에 대한, 일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소원처럼 그녀는 요즘 자활근로를 하고 있다. 거리 청소도 하고, 집안 정리도 하면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행복가게에서 ‘담배’를 사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또 그녀는 ‘18살’의 세월 안에 살고 있고 ‘그늘’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제 그녀가 살 수 있는 담배의 행복처럼, 멀지 않아 기억도 살 수 있게 되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
채씨 아주머니가 외출했다 들어오는데 머리를 예쁘게 깎고 나타났습니다.
뭐 그저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지만, 3개월 전의 채씨 아주머니를 본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감지 않아 까치집을 지은 긴 단발에 앞머리로는 얼굴 반쯤을 가리고 늘 땅을 보고 다니던, 발뒤꿈치가 심하게 갈라지고 터져 그 사이로 까만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손톱 발톱 사이로 까만 때가 가득하던, 씻지도 않고 옷도 안 갈아입어서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한참이나 냄새가 가시지 않던, 정말 그 채씨 아주머니 맞나 싶게 깨끗합니다.
채씨 아주머니는 좋은집 문을 연 초기에 이용하시기 시작해서 지금은 최고참 이용자가 된 분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같이 이용하는 분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습니다.
특히나 생리중인데도 속옷을 안 입겠다 버텨서 우리를 일종의 ‘문화충격’에 빠트렸던 분이지요.
여러 실무자들이 돌아가면서 제발 씻어줄 것을 간청도 하고, 권고도 했지만, 그것이 채씨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금 너무 씻기 싫은데요, 저한테는 너무 힘든데요, 좀 있다 하면 안 되나요?”
이렇게 호소하면,
“그럼 우선 발만 씻고 머리는 내일 감으실래요?”
이렇게 협상하기를 수 십 번, 억지로 목욕탕에 끌고 들어가 비누질도 하고 옷도 갈아입히고를 수차례 반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나 봅니다.
조금씩 스스로 씻기도 하고, 속옷도 입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선생님, 옷 깨끗하게 빨아 널었어요. 이제부터 빨간 줄무늬 옷은 잠잘 때 입는 옷이구요, 파란 셔츠가 외출복이에요”라고 자랑을 할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는 자기도 나이가 44살인데 앞날을 생각해서 일을 해야 되겠으니 일자리를 알선해 달라고 합니다.
하- 참, 저 사람이 실무자 불러 세워서 무기력하고 졸린 말투로 “선생님-, 문 좀 닫아주고 가세요” 하던 그분이 맞나?^^
물론 아직도 채씨 아주머니의 세계는 매우 분절적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채씨는 하루종일 손짓발짓하며 혼잣말을 하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와 공유하는 현실 말고, 또다른 세계에서 채씨를 붙들어 두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사실 우리도 충분히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이만큼이면 쉼터에 가서도 잘 지내겠다 싶어 의뢰를 해 드렸는데 조금 후 다시 짐을 챙겨 돌아왔습니다.
얼굴을 씰룩거리고 손을 떨면서 눈이 빨개가지고는 그곳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왔다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니까 고개를 흔들며 그냥 어려웠다고 합니다.
채씨 아주머니에게 현실 세계는 여전히 낯선 곳인 것 같습니다.
변화는 더디고도 더딥니다.
그러나 좋은 바람, 따스한 햇볕 속에서 온갖 식물들이 싹 틔우고 꽃 피우는 것처럼, 좋은집에서의 몇 일, 혹은 몇 달이 우리 여성노숙인들에게 바람과 햇볕이 될 수 있겠거니 생각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 좋은집은 여성노숙인과 노숙위기의 여성/모자가족이 응급보호를 받고 편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상담보호센터입니다. |
* 5월 CMS 후원자 명단
강순애, 강윤수, 고경심, 고승원, 권이남, 권혁건, 금지연, 기은아, 김명옥, 김미라, 김미영, 김민석,
김상욱, 김상태, 김석범, 김선태, 김소영, 김용희, 김원일, 김유광, 김정곤, 김정규, 김지경, 김진미,
김철주, 김태순, 김태용, 김행선, 김홍배, 남궁욱, 노정희, 류희경, 문덕순, 박범철, 박순옥, 박영미,
박지웅, 박창근, 박현정, 박혜란, 박호산, 백운선, 백종선, 서병옥, 서숙희, 서정화, 서정희, 설윤자,
소유진, 손경철, 송명옥, 송영실, 신원우, 안순훈, 안주현, 양영초, 오기철, 오은숙, 오은실, 우미정,
유나리, 유영호, 윤민석, 윤임순, 이경란, 이경아, 이근덕, 이기옥, 이미애, 이범승, 이상훈, 이선우,
이승원, 이승은, 이영미, 이영숙, 이영희, 이의환, 이인선, 이전미, 이정호, 이진선, 이창준, 인미순,
임경민, 임정환, 정동수, 정보영, 정상식, 정선진, 정성철, 정윤석, 정한수, 정희정, 진경희, 진미연,
차경윤, 최미현, 최병길, 최성남, 최은주, 하근철, 하정희, 한광희, 한정숙, 홍장석, 황운성, 황인재
· 총 1,994,800원
- 작은음악회 후원금 3,874,000원(박찬숙 국회의원 1,000,000원)
- 정기후원금 : 남서울 로터리 100,000원
- 특별후원금 : 방승환 100,000원(3월 8일)
후원금 합계 총 6,068,800원
*5월 물품을 기증하신 분
성심여고(바자회물품), 용산자활후견기관(김치 3박스, 사우나통, 음료수, 스프), 강동구청 문화체육과장(수건), 최영미 아나운서(중고의류), 표지은(중고의류 2박스), 장정희(중고의류), 김은정(생리대 1박스), 용산푸드뱅크(돈가스, 도넛츠)
*5월 자원봉사 해주신 분
아동지도 : 이주현(국어, 수학), 정유진(미술), 이안나(영어), 테마프로그램(이재익)
탁구지도 : 김민광
좋은집 공사 : 김정곤님과 직업훈련 동료들이 좋은집 작은 마당의 타일공사를 예쁘게 해주셨습니다.
도움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